Unfold X 2023

Unfold X 2023

융합이 새로움의 기준이되는 시대, 서울문화재단은 첨단 기술기반 예술창작의 현주소를 선보이는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를 준비했습니다.

2023년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는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한 교류 관문이었던 구 서울역이 변모한 문화역서울284를 무대로, 《달로 가는 정거장(The Way Station to the Moon)》을 펼쳐보입니다.

미디어아트의 거장 백남준 작품과의 조우, 미디어 거울과의 놀이, 휘몰아치는 거대한 물기둥과 함께 하는 경험까지 국내・외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융합예술분야 유수 작품들로 구성한 전시와 강연 및 레이저와 어우러진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시민과 함께 향유하고자 합니다.

달로가는 정거장

기술은 언제나 다른 모습을 하고 우리 앞에 등장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선언 아래 도시 공간과의 이동을 신기술을 통해 목표했다면, 2023년 인류를 둘러싼 새로운 기술은 인간의 여행지를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시공을 뛰어넘어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해왔다.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3-달로 가는 정거장》은 예술과 기술의 융복합 방법론을 질의하는 동시대 예술가들, 국내외 여러 기관 등을 연결한다. “달로 가는 정거장”은 1925년 문을 연 유라시아 연결 철도의 출발지였던 문화유산 구 서울역사에서 다가오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한다. 과거와 미래, 연결과 이동, 다변화된 기술 기반 생활의 시스템을 내다본다. 《달로 가는 정거장》은 예술가들의 VR, 키네틱, 접촉, 인공지능, 공명 스피커 등을 경유한다. 전시를 통해 기차가 출발/도착했던 각 방은 여정의 모티브를 담은 그 자체로의 루트가 된다.1 이때 ‘루트’라 하는 것은 미술사학자 리사 그린버그가 글 「미로로서의 전시」에서 언급했듯, 전시가 개별 작품을 묶는 주제를 담는 매개물만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매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2

《달로 가는 정거장》은 세 가지 주제를 연결한다. 첫째, 기술이 도래하게 하는 새로운 시간의 감각이다. 둘째, 기술이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우리’, 공동체의 감각이다. 셋째, 미래 세대와 기술의 전망이다.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3-달로 가는 정거장》은 기술과 예술의 접촉, 작가-관객-기관의 협력을 통한 예술 플랫폼을 지향한다. 작가의 작업을 경험하며 신체, 미래, 사물에 대한 인식론적 변화를 탐구한다.

이러한 세 개의 주제는 동시대 예술 조건이자 태도로서 다음의 게이트를 구성한다. ‘Gate 1. 환승 시간’은 문화역서울284 중앙홀과 좌우 1층, 서측복도를 아우른다. 서울역 광장, 밖의 소리가 투명하게 들리는 3등대합실에서부터, 기차와 열차 시간표, 문화역서울284에 걸린 파말바(시계)를 관장하던 역장사무실, 귀빈실과 여인들만이 드나들었던 특혜로 치장한 부인대합실, 귀빈실에 이르기까지 이 공간 안에는 기술이 시간의 감각을 다루는 방법론을 보여주는 작업들로 구성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환승 시간 - 인 / 아웃〉 섹션에서는 동시대 융합예술의 역사적 기원과 ‘지금’의 상황을 펼친다. 기술 발전은 이동 시간, 노동 시간 등 시간의 단축뿐 아니라 인간과 사물에 대한 인식론 자체를 탈바꿈화했다.

중앙홀과 3등대합실에 자리한 〈환승 시간 - 인〉 섹션에서는 전시 제목이 불러온 ‘달’의 이미지를 다감각화하는 작가들의 작업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술이 변화시키는 방법론으로 진입하며, ‘달’이라는 환영의 동시대적 정의를 시도한다. 기술이 가져온 변화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우리는 21세기 예술과 기술이 질문하는 융복합의 시공으로 시간을 환승하게 될 것이다.

중앙홀을 중심으로 그 좌측에는 ‘걷는 감각’으로 작업들을 끝까지 따라가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환승 시간 - 아웃〉은 백남준의 〈시스틴 채플〉(1993/2023)의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의 망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야심 찬 콜라주적 실천에서 시작한다. 〈환승 시간 - 아웃〉은 오늘날 가상현실(VR)과 인공지능(AI), 파노라마적 시선과 동양 정신의 연동을 통해 각각의 별자리를 그려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Gate 2. 우리, 여행자들’은 기차 출발을 기다리고 그 옆이 ‘임의접속’ 하듯 우연히 앉게 된 어떤 이웃과 타자들을 생각하며 기획되었다. ‘어떤 기차를 타고 누구 옆자리에 앉아 어디로 가는가?’가 질문의 시작이었다. 수십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한국 최초의 서양식 식당이었던 그릴이 있고 그 안의 음식들을 만들고 통신(transfer)하던 철체 운반실, 창문이 있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우리’라는 명제가 온라인, 오프라인, 인종, 성차, 도시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어떤 복수의 집합체이자 공동체로 묶이고 분산되는가를 이야기한다.

〈우리, 여행자들〉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변화한 새로운 여정과 항해를 각자 또는 공동의 풍경으로 제시한다. 2층 그릴을 중심으로 한 전시장에는 인류세와 게임적 의상, 아날로그의 기술과 과거를 예측하는 미래의 기술이 공존한다. 〈우리, 여행자들〉은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통해 공동체, 사회, 다른 시간대와 자연과의 공존/긴장을 상상하는, 다른 방식의 ‘인터랙션’, 상호 접촉을 질문한다. 흥미롭게도 ‘Gate 2. 우리, 여행자들’ 섹션에는 독일의 ZKM, 스위스의 HEK, 캐나다 일렉트라 등 서울문화재단과 협력을 맺은 해외 융합예술 기관과 대화 후 초대된 작업들이 놓여있다. 작가들은 ‘그릴 준비실’에서 여전히 음식 향이 나는지 묻기도 했고, 한국의 격자무늬 시공이 마인크래프트 게임의 현존 무대와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Gate 3. 내일 도착’은 문화역서울284에서 가장 당대적인 물질성을 지닌 벽과 바닥, 천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1990년에 제작된 역사적 작업부터 2023년 동시대성을 감각적으로 체감하는 작업들의 향방을 쫓는다. 간이식당으로 이용되었던 통로와 이어지는 복도를 두고 대칭되는 양측 공간에서, 작가들의 2023년 질문들을 보게 된다. 여기 작가들은 각기 다른 말하기의 방법론을 통해 그들 작업에 위치한 기술 감각을 공통의 감각으로 새롭게 질문한다. 관객은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작업해 나가는 작가들의 작업 앞에서 미래로 향할 새로운 예술과 기술이 조우하는 시스템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전시가 미래를 과거/현재와 겹쳐 생각하는 ‘공유지’에 기반한다고 본다. 나아가 서울에 거주할 뿐 아니라 서울을 오가며 각자의 상상했던 많은 이들이 여기를 지나가며 집중과 산만, 몰입과 참여, 꿈과 다른 말하기의 방법론을 경험하리라 본다. 마치 전시 출발점에서 우리가 백남준의 미실현 악보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SinfoNiE FoR 20 Rooms)〉(1961)을 서울역 공간에 겹쳐 보았던 것처럼, 각자가 자기-위치와 다른 시간대, 그리고 남다른 여정을 함께 살필 수 있기를 바란다.

글 현시원(《언폴드엑스 2023-달로 가는 정거장》 큐레이터)
  1. Reesa Greenberg, “The Labyrinthine Exhibition: A New Genre”, Stedelijk Studies Studies 7, 2018, pp. 1-12.
  2. 매체로서의 전시를 다루는 관점은 다음의 글 참조. 폴 오닐,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 : 큐레이팅의 문화, 문화의 큐레이팅』, 변현주 역, 더 플로어플랜, 2019, p. 92.
우리는 지금 달로 향한다. 달로 가는 길은 달이 인간의 관측 대상이 된 순간부터 1969년 인간이 첫발을 내디딘 이후에도 멀고 험했다. 그 길은 늘 최첨단 기술 그 자체로서 까다로웠지만, 한국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Danuri)’가 잘 보여주듯 여전히 인류는 우주 탐사에 도전하며 새로운 꿈과 기대를 품는다. 그러니까 이 전시에서 우리는 동시대 기술을 발판 삼아 여전히 또 다른 도전과 희망의 장소로 떠나보는 것이다.

출발 시각에 맞춰 도착할 정거장은 오래전 경성역이자 서울역이었던 문화역서울284이다. 달이 미래라는 현재의 열망을 나타내 왔던 것처럼, 문화역서울284는 오래도록 이동의 중심이자 잠들지 않는 꿈과 계획의 장소로 기능했다. 열차는 속도로서 근대의 감각을 부여했고, 사람들은 새로운 출발과 경험을 기대하며 경성역에 들어섰다. 그 희망은 경성역이 1947년 서울역으로 이름을 바꾼 후에도, 열차 내외의 사고와 범죄의 가능성이 이어져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 여행을 시작하며 우리는 시적이고 물리적인 대상인 달을 새롭게 마주한다. 각각이 상상하는 달은 모두 다른 모양새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며 여정을 함께 한다. 또 다른 시공간을 보여주는 예술은 무엇보다 예술과 기술을 연결했던 백남준의 달과 교차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는 베니스와 울란바토르, 고대와 현대, 자연과 기술처럼 이분된 수많은 것을 가로질러 달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달을 자주 바라보고 종종 경유했다.

관객은 달로 가는 동안, 마치 중간 정차역에 내리듯 문화역서울284의 방 곳곳을 들어갔다 빠져나온다. 그 과정에서 현실의 경험이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가상현실 안으로 들어가고, 우리가 의심 없이 받아들여 온 인식을 다시금 생각해 보며, 나 이외의 존재와 대화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기술이 우리의 일상과 사고 곳곳에 만연한 만큼, 우리는 예술과 기술로서 우리를 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미래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1980년 백남준은 이렇게 말했다. “비디오테이프 녹화기에는 ‘빨리 감기’ ‘되감기’ ‘정지’ 버튼이 있지만, 우리의 삶에는 ‘시작’ 버튼 하나뿐이다. … 그러니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 우리는 비용을 지급하면서 교사들을 고용한다. 왜냐하면 베타맥스처럼 그들은 ‘빨리 감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는 이러한 ‘빨리 감기’ ‘되감기' ‘정지' 사이에 서서 수많은 ‘시작'을 제안한다.

글 김예림(《언폴드엑스 2023-달로 가는 정거장》 코디네이터)


우리의 상호작용

이번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에서는 일렉트라 몬트리올, 스위스 전자예술 박물관 (HEK), 독일 예술과 매체기술센터 (ZKM)가 다섯 작품을 통해 《달로 가는 정거장(The Way Station to the Moon)》에 참여한다. 특히 인터렉티브 아트(Interactive Art), 즉 상호작용 예술을 다수 선보이며 관람객들은 세 작품, 〈민들레〉, 〈스킨 3.0〉, 〈감시〉를 통하여 인터렉티브 아트의 시작과 현재를 가늠할 수 있다.

마이크에 입김을 부는 순간 화면 속 민들레 씨가 날아가는 〈민들레〉는 관람객 ‘신체’의 직접적 참여를 통해 기존 관객과 작품의 전통적 관계를 변화시켰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이 둘은 1995년부터 마리-헬렌 트라무스(Marie-Hélène Tramus)와 함께 두 번째 상호작용(Seconde interactivité) 개념을 정의하고 창작 활동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두 번째 상호작용’은 생산하는 시스템이 그것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학습하고 변화시키는 지능적 행동을 보이는 상호작용을 일컫는다. 이는 신경망, 유전자 알고리즘과 같은 원리가 적용되며, 인공지능, 혹은 그 이상의 인공생명과 이어질 수 있다. 즉, 인터렉티브 아트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이 상호작용 원리를 기반으로 발전한다는 것에서 창의적이 아닌 창발적 성향을 보이며 상호작용의 정교함을 추구하는 것이 곧 동시대 인터렉티브 아트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트리스탄 슐츠의 〈스킨 3.0〉 과 루이-필립 롱도의 〈감시〉로 최근 인터렉티브 아트의 경향에 대해 생각해 보자.
슐츠의 작품은 카메라 인식 기반으로 사용자의 생체 데이터를 분석하여 독특한 디지털 의상을 생성한다. 규범적 표준, 더 나아가 젠더의 전형성을 벗어난 다양한 가상 신체는 현대인의 신체적 다양성을 표현하고 지속 가능한 디지털 패션은 오늘날 패션계의 환경, 정치, 경제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또 다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즉, 우리는 가상 속 ‘이미지’가 어떻게 ‘패션 업계’라는 물리적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루이-필립 롱도의 〈감시〉는 대형 스크린으로 관람객을 실물 크기로 스캔하고 관람객의 움직임을 통해 비틀어진 이미지로 완성된다. 스티브 만(Steve Mann)이 개발한 ‘감시’의 개념은 시민들과 기관들이 서로를 끊임없이 염탐하는 상호 감시의 모양새를 뜻하는데, 작가는 해당 개념을 바탕으로 ‘감시’를 유쾌하게 자각시킨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은 끊임없고, 그에 따른 인터렉티브 아트의 발전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즉, 우리는 무엇과 무엇을,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지 생각해 볼 차례이다. 기계 혹은 인공지능이 우리와 똑같은 존재 혹은 또 다른 도덕적, 감정적 존재가 되어 상호작용 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말이 아니다. 그저 기술을 통해 우리 아닌 모든 타자와의 소통의 시도에서 예술의 가치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달로 가는 정거장(The Way Station to the Moon)》은 이 이상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정거장이 되어줄 것이다.

글 권은지 (《언폴드엑스 2023-달로 가는 정거장》 코디네이터)